그들을 위하여 Live and Learn

 -2010년 10월 2일에 썼던 글입니다-



 일본에 와서 범죄자 취급을 받아본게 한두번은 아니지만 모든 것의 시작은 엉뚱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키하바라의 클럽세가 등을 돌아다니다 보면 머리속에서 그리고 있던 일본 게임센터의 분위기와는 조금 동떨어진, 1, 2층의 대목을 차지하고 있는 유에프오캐처와 먼저 만나게 된다.
2009년 11월 어느날의 아키하바라도 딱 한가지만 빼고 언제나와 마찬가지인 모습으로 있었다.

 오덕을 자처하면서도 최신의 유행하는 만화나 게임은 하나도 모르는 어정쩡한 포지션에 위치해버린 내게 기계 속의 경품들은 눈길을 끌 수 없었지만, 그날따라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몸이 인력에 이끌리듯 클럽세가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기계 앞에 서게 되자 왠지 경품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동전을 집어넣게 되는 것이다.
실수로 잘 못 누른 타이밍에 집게손이 리틀 버스터즈라는 게임의 목욕 타올을 밑으로 떨어뜨릴 때 나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나의 재능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다음으로 도전했던 럭키스타의 '이즈미 코나타' 피규어도 세번 정도의 시도로 뽑아버리는 순간 머리속에는 이런 거만한 생각마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클럽세가는 너무 쉬워서 재미가 없어'

 나는 곧바로 자리를 옮겨 한 블럭 건너의 타이토 Hey! 를 찾아갔다.
조금 심심한 경품들이 많았던 클럽세가와는 달리 Hey! 에는 나의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아이템들이 놓여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야 뽑을 맛이 나지. 나는 나의 재능을 믿으며 아무런 주저 없이 동전을 넣었다.

 그런데 하나도 뽑을 수가 없었다.

 이건 링이 달려있으니까 집게를 이렇게 넣어서? 경사진 곳에서는 어느 부분을 들면 되지? 500엔 1000엔 2000엔...
자신감이 허무함으로 기대가 분노로 변해감과 함께 내 지갑은 가벼워져 갔으며 나는 정확히 5천엔을 날리고 나서야 유에프오캐처를 그만둘 수 있었다. 

 그 뒤 다시는 유에프오캐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였지만 며칠 뒤 무심코 다시 들렀던 클럽세가에서 나는 다시 유혹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구석에 위치한 한 경품기계의 쿠션이 배출구를 향해 삐져나와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제딴에는 구경만 한다고 들어간 것이지만 한번 맛을 본 사람에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걸 뽑으면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나는 토라도라라는 만화를 본 적도 없지만 어쨌든 500엔에 꺼낼 수 있다면 이익아닌가?
그렇게 가지고 있는 동전을 모두 쏟아붙고 동전을 교환하고를 반복하면서 쿠션을 고작 5센티미터 정도 움직이는데 다시 5천엔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박으로 몰락하는 사람들이 언론의 가십란을 장식할 때마다 절제하지 못하는 그들을 비웃던 내가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나를 경악케 한건 그 상황 속에서도 유에프오 캐처의 플라스틱 케이스 너머로 보이는 쿠션을 보면서 한두번만 더 도전하면 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내 모습에 혐오감을 느꼈다.

 참담한 마음으로 클럽세가를 나서 아키하바라 역 앞으로 돌아와 인생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처럼 흐리멍텅한 표정으로 츄오도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십분 정도 지난 뒤였나, 건너편에서 뭔가 한건 잡았다는 표정의 2인조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흔히 있는 호객행위겠거니 싶었기에 무시하려 하니 몸을 밀착시키며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드는 것이다.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POLICE.

'누구 기다려? 타이마?'

 타이마가 뭐야?

'타이마.. 마리화나라고 알아?'

 나는 어이가 없어서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사람들은 지금 나에게 마약 거래하러 나왔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혼란 속에 초등수준으로 퇴행한 일본어로 회화를 주고 받은 끝에 오해는 풀렸지만 이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내가 그렇게 나쁜놈처럼 보입니까?'
'응'

 인상이 나쁘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평소에 감정표현을 잘 안 한다고 생각 했었는데, 사실 나는 내 마음 속의 온갖 추악한 감정들을 그대로 얼굴을 통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외에서 일부러 돈을 쓰러 찾아온 관광객을 마약사범으로 만들어 놓은 뒤 그들은 사과 한마디 없이 가버렸다.
나는 이렇게 경찰의 친구가 되었지만 지금은 그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유에프오캐처는 마약보다 해롭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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